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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굽는 매장

 

행복을 굽는 매장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은행에 업무상 잔돈을 바꾸러 갔을 때 여직원의 첫 인사였다.

"번 냄새가 나요."

번이라 함은 로티 번을 말하는데, 커피와 함께 먹는 둥글납작한 빵의 일종이다.


그렇다. 나의 직업은 바리스타이며 커피전문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커피뿐 아니라 음료와 차, 그리고 맛있는 빵도 파는 작고 아담한 곳이다.

사실 직장을 구하기 전, 나는 열심히 기도를 드렸었다.

가라앉을 때나 들떠 있을 때나 맑을 때나 탁할 때나….

나의 바람이 하늘로 퐁퐁퐁 전달이 되도록~^^


그래서일까? 하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사실 서비스직 치고 소위 사무실 시간대인 9시~6시 근무에 일요일 휴무인 곳이 많지 않은데

그러한 곳에 세 군데나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부부가 운영을 하시는데 나이가 어머니 아버지 나이랑 비슷하시다.


'헉! 두 사장님을 모시고 일을 해야 하다니!!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처음의 염려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두 분은 투박하신 말투와는 달리

비둘기가 오는 시간에 맞춰 빵가루를 뿌려 주시는, 마음은 아주 따뜻하신 분이셨다.

감사하게도 나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첫 번째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이곳 사장님, 사모님은 말투가 투박한 편인데도

오픈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매장치곤 단골손님이 많았다.

바로 고객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까닭이다.

손님들도 말투 너머로 따뜻한 온정이 있는 마음을 보았나보다. 내가 느낀 것처럼.

사장님께선 손님들이 언제 자주 오는지, 무엇을 잘 드시는지를 대부분 기억하고 계셨다.

때론 직업까지도.

'저 손님은 토요일마다 호박 라테를 드시러 오셔'

'저 손님은 헬스 강사인데 체대를 나왔어’

'저 손님은 이틀에 한 번씩 오는데 시럽을 안 넣으셔'

평소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나.

열렬히 마음이 맞는 친구를 원하면서도 방어벽을 치며 혼자 있던 나.

때론 사람들이 두렵고 무서워 피하고 싶던 나.

이런 나는 사라져야 했다.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미소를 지으며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는 나여야 한다.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즐겁게 웃으며 반기는,

그런 행복한 공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사장님한테 '서비스'에 대한 강의를 15분가량은 들은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길 원하며

그러기에 최상의 서비스는 관심이라고 하셨다.

점심시간에 손님들이 와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바쁠 때는

잘 웃어지지가 않고 표정 관리가 안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웃으며 친절하도록 노력 중이다.

매일매일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환한 웃음이 자연스러운 내가 되지 않을까?

따뜻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나이고 싶다. 더 따뜻해지고 싶다.

 

두 번째는, '책임감'이다.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7개월 동안 이곳에 직원이 몇 있었는데 거의 다 안 좋게 그만두었다.

첫 번째 남자직원은 툭하면 술 마시고 안 나오고,

두 번째 여자직원은 일도 잘하고 손님들한테도 잘했는데,

매일 5분, 10분, 30분 지각하고 무단결석 두 번에 일주일 동안 잠수.

사장님들께서 많이 애를 태우신 모양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왜 그러냐고 하시면서….

허나 그들의 모습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내게 있어 책임감이란 친구는 한동안 가출을 했다가

1년 전부터 슬슬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피해를 입으시며 사람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기본'이 중요함을 강조하시는 모습에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배우고 있다.


세 번째는 '일관성'이다. 왔다 갔다 하지 않는 것.^^

실은 수년 전 내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뿌리 뽑히지가 않았는지….

그러한 부분에 대한 터치가 있었다.

여러 일들이 있지만, 주문을 받을 때의 예를 한두 가지 들자면,

간혹 고객 분께서 주문하신 메뉴를 계속 바꿀 때가 있다.

“아메리카노 하나, 카라멜 마끼아또 하나요.”

보통 주문을 받음과 동시에 마음속으론 음료 만들 준비도 진행된다.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려 하니,

“아니, 그냥 카라멜 마끼아또 두 개 주세요.”

그래서 포스에 주문 받은 음료를 수정하고 다시 계산하려 하면,

“잠시만요. 저, 근데 녹차라떼는 맛있나요?”

“….”

결국 그분은 녹차라떼와 캬라멜 마끼아또를 사 가셨다는….

한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아이스커피가 들어와서 신속하게 음료를 만드니,

“어! 벌써 다 만드셨나요? 카페라떼가 더 먹고 싶은데….”

허걱! 음료를 만드는 고새 마음이 바뀌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가끔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럴 때면 하늘이 나에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을 다듬어 주시려고

이렇게 당하게(?) 하시며 ‘사람이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의 예전의 갈대 같던 마음에 비하면 양호한 지라 그저 묵묵히 받을 뿐.^^;


아직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채 안 되었는데 적응하는 단계라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점점 이곳이 좋아지고 있다.

요 며칠 크림을 돌돌 말아 올려서 직접 빵도 구워 봤는데

오븐에 구워지는 빵을 보면 빵들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손길을 거치며 태어나는 빵은 어쩐지 더 사랑스럽고 애정이 간다.


미친 듯이(?) 일을 하던 전 매장에서 벗어나 옮긴 이곳 매장은

사람답게 일한다는 생각이 든다.

바쁠 땐 바쁘지만 한가할 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동영상으로 '라떼아트'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아마 이곳에서 일을 하며 나는 점점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알뜰함, 꼼꼼함 등 배우고 있는 부분이 많지만

아직 많이 모자라기에 이 모든 배움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까지는

분명 일정 기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어떤 상황에서건, 환한 웃음과 여유를 지니는 따뜻한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의 웃음이, 나의 맑음이, 나의 밝음이, 나의 따뜻함이 사람들을 적시고 주변을 적셔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삶의 향기를 전하는 이가 되고 싶다.



김지영

1982년생|바리스타


명상을 시작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이제야 '삶'에 대해 진지하고 생각하며 제대로 된 삶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명상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입니다. 명상이 아니었다면, 나의 큰 단점들을 어떻게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고칠 생각을 했을까요? 여러 배움의 기회를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족하기에 더 많이 노력하며, 세상과 사람들과 깊이 소통하길 바랍니다. 인도해주시는 길을 걸으며 아름답게 살다 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light as a feather | 2009/08/25 19:43 |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 트랙백 | 덧글(0)

반듯하지 않은 인생 4. 내가 만나는 천사(하)

 

오랜 시간 동안 저는 두려워했으니까요.

늘 운명이 나를 어찌할까 두려워했고, 온통 ‘좁은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작은 녀석들이지만 사람 앞에 서는 게 두렵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두렵고,

영영 사랑을 하지 못할까 두렵고,

배신당할까 두렵고,

어느 날 갑자기 불구가 될까 두렵고, 남들만큼 못살까 두렵고.

심지어는 귀신이 있을까봐 불을 켜두며 늘 잠을 청하기가 두려웠어요.

죽어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이, 그 다음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어 두려웠고요.

겉으론 다정하고 여유로운 미소로 실실 웃고 있었지만….

내가 너무 못나 밉고, 자신이 없었답니다.

나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그릇을 가진 사람이었던 나였으니까요.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우연, 아니 귀한 인연으로

진정 나를 만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오는 반짝이는 기운을 느끼고, 말씀을 들으며, 깊은 호흡을 통해

언젠가부터 처음으로 내 자신을 떠올려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별의별 것들이 떠오르면서

처음으로 제게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내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많았던 만남, 특히 나의 학생으로 만났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님의 존재를 빌어 이 세상 밖으로 보내주신 큰 사랑을

한참 동안 저버렸던 것 같아 엉엉 눈물이 났습니다.

아직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서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내가 받은 그 情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오늘도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날 채비를 하면서요.

그 길을 동행할 많은 이들을 만나며, 함께 이렇게 가르치고 배우며.

그 만남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요.

이렇게 귀한 생을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크고 작은, 기쁘고도 슬픈, ‘기쁨’들로 맞이하면서 말이에요.



김나진

1976년생|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평범한 교사입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자 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10년째 매일 이 거울 앞에 서면서 그동안 제 인생에서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유복하게 그저 받기만 하며 살아온 환경에서 자란 제가

저마다 각자의 색깔을 가진 다양한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심신이 지쳐오고 자주 우울해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몇 해 전 좀 더 건강해지고 싶어 우연히 찾은 명상을 통해

몸의 건강뿐 아니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비단 학생들뿐 아니라 그동안 만났던 모든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고요.

또한 처음으로 제 자신을 제대로 되돌아보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내 자신이, 또 함께 하는 이들과 더불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인간이 겪는 생로병사에 대한 무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 앎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또 이 교직을 통해 누군가를 아낌없이 빛나게 하는 귀한 소임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명상으로 매일을 시작하며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난 저를 만납니다.

‘학생들을 빛내주는 거름이 되자’ 오늘도 교문을 들어서며 이렇게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중에서 발췌



by light as a feather | 2009/08/19 12:11 |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 트랙백 | 덧글(0)

반듯하지 않은 인생 4. 내가 만나는 천사(상)

 

내가 만나는 천사(상)


흰 눈이 펄펄 내리는 아침입니다.

길이 막힐까봐 서둘러 나와 조금 일찍 출근을 했습니다.

‘하아, 오늘은 녀석들이 얼마나 운동장을 나가자고 조를까?’

이 눈을 옮겨와 진흙탕 교실을 만들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살짝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 인적이 없는 운동장 한가운데를 소복소복 바삐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땅만 보고 걷자니 내 허리 근처만한 높이의 한 녀석이랑 마주칩니다.

어른 우산을 들고,

학원 보조가방 하나와,

모자를 둘러쓰고, 목도리를 휘휘 감고, 아주 큰 장갑을 낀 채,

눈만 빼꼼 내밀어 도통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2학년 우리 반 키 번호 1번, 체구도 1번인 여자아이입니다.

“얘야, 고렇게 싸매면 앞이 보이니?”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사랑스럽기도 하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발육이 늦은 탓인지 모기만한 목소리와 읽기와 쓰기, 기본적인 셈하기도 늦어

2학기부터는 거의 매일 남겨 나머지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제가 제 성질을 못 이겨 버럭 야단도 치고,

그러다 후회가 들면 꼭 안아주고,

저 작은 얼굴에 온통 뽀뽀자국이나 이마에 별 도장을 찍어 집으로 보내곤 했었습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눈발을 함께 맞는 지금,

녀석이 잠깐 기다리라고 합니다.

“어? 일단 교실에 가서….”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운동장에 자기 몸집보다 더 큰 가방을 풀어놓습니다.

잡동사니와 책이 가득한 가방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가방 속 책 사이사이에 꽁꽁 얼어붙은 손을 열심히 집어넣고 있네요. 

“아! 찾았다.”

열심히 실랑이 끝에 찾아 제게 내민 것은

‘情’ 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가방 속에서 다 부서진 초코파이였습니다.

나는 그때의 일이 그림처럼 자주 떠오릅니다.


올해 들어 벌써 10년차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뭔가 다급한 마음에 대학원까지 마쳤으니 가방끈은 길고,

가르치고, 배우고, 또 배움 속에서 가르치고….

지긋지긋한 학교만 벌써 몇 년을 다녔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이 다 배움을 주는 학교이니

어쩌면 평생 학교를 다니고 있는 셈이지만요.

세월만큼 이제는 많은 학생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한 해만 지나도 이름을 까먹기 일쑤이고,

너무 커버려 때때로 못 알아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만남 속에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눈망울’입니다.

그 ‘눈망울’에서 전해지는 아이들의 마음….

처음 부임한 날 기억이 납니다.

우리 만남은 ‘인연’이라고 칠판에 쓰며 커다랗게 우주를 그리고,

그보다 작은 지구를 그리고, 작은 대한민국과 서울 그리고 구로동을 표시하며

OO초등학교, 그리고 5학년 4반 교실을 표시했습니다.

우리는 ‘우연’이 아닌 굉장히 소중한 ‘인연’으로 만났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잘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준비한 ‘만남’ 이라는 노래도 불렀고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억지로 손을 부여잡고 부르고 또 불렀답니다.

‘인연’을 그리 여러 차례 이야기했음에도

그날 일기장에는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은 (‘인연’이 아닌) ‘우연’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썼더군요.

그 이후 지금까지 많은 시간동안

그렇게 보내주신 귀한 ‘인연’을 ‘우연’으로 흘려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 절친한 친구 녀석이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는 말을 종종 했습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배꼽을 잡고 연신 깔깔거렸는데,

다복한 가정에다가 늘 유쾌하고 유머가 넘치는 녀석이 그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웬 생뚱맞은 소리냐고 했습니다.

한참 후에 그 친구는 생일날 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놀라 눈물도 콧물도 안 나오더군요.

고통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가끔 이 녀석들이 뛰노는 것을 바라볼 때면

흘려들었던 그 말이 아무 힘든 일 없이 살아온 나를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만들게 하기도 합니다.

‘고해의 바다’

아빠가 100년 전부터 하느님과 살게 됐다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학기 초에 늘 주머니에 한 손을 집어넣어 아이들 앞에서 손을 빼라고 강요했더니

슬며시 뺀 손에 다섯 손가락이 없어 충격과 함께 너무나 미안했던 일.

종종 냄새나는 화장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며 몇 시간이고 숨어 있던 아이.

가출을 밥 먹듯이 했던 녀석을 찾아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게 했던 아이.

새엄마가 변을 못 가린다며 불로 항문을 지져 병원에 입원했던 아이.

가난으로 영양이 부족해서 시력이 손상되었던 아이.

아빠가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져 격리를 위해 전학을 갔던 아이.

미혼모였던 엄마의 술국을 끓여준다고 가끔 학교에 늦던 아이.

갓 태어난 동생을 봐줄 사람이 없어 결석을 밥 먹듯이 했던 아이.

놀림 당하던 혼혈인 외국인 근로자의 아이.

겉으론 다정했지만 데리고 있었던 것이 번거롭게만 느껴졌던 정신지체 아이.

또 이들의 엄마, 아빠, 할머니….

물론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아이들도 많았지만

누구를 안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배경을 알기 전에는, 그 환경 속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 친해지기 전에는, 독심술을 터득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겠더군요.

갑자기 짜증이 많아졌거나, 다툼이 많아진 아이를 한참 구박하다 조용히 불러다 놓으면

한참 뒤에 사실은 헤어진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엉엉 울어버리는 아이를….

형에게 비교당하는 것을 원망해 삐뚤어진 행동을 한다는 것도,

가끔 저를 좋아해서 반의 누군가를 짝사랑해 그러는 것도,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사춘기 속의 아이들.

사실 나는, ‘귀찮다. 힘들다’ 때론 ‘전혀 알고 싶지 않다’ 였습니다.

‘왜 내게 이런 아이들이 주어졌을까?’ 라는 푸념을 많이 늘어놓았답니다.

by light as a feather | 2009/08/19 12:10 |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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